만드는 엔지니어에서, 파는 엔지니어로: 한 PE의 자발적 전직
Stay(숙박)실 성장사업팀 국승현님
결정까지 3초. 직군을 옮기기까지 한 달.
마이리얼트립 결제정산개발팀에서 4년 반 동안 정산 시스템을 만들어 온 프로덕트 엔지니어(PE) 국승현님이 최근 Stay(숙박)실 성장사업팀 세일즈 현장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마이리얼트립 PE가 팀과 직무를 바꿔 세일즈로 전직한 첫 사례입니다.
마이리얼트립의 PE 체제는 “만든 사람이 문제를 끝까지 책임진다”는 철학 위에 서 있습니다. AI가 구현의 속도를 끌어올릴수록, 사람이 만드는 레버리지는 더 넓은 문제를 직접 만나 끝까지 풀어내는 힘에서 나옵니다. ‘만드는 능력’에 ‘직접 파는 능력’이 더해져야 한다는 인재상 — 실리콘밸리가 ‘Distribution(유통·판매)’이라 부르는 바로 그 역량입니다.
배경에는 Stay실의 구조적 전환이 있습니다. 중소형 숙박이라는 새로운 성장 축을 만들기 위해 성장사업팀이 신설됐고, 사내 공모 공지에 승현님이 가장 먼저 손을 들었습니다. 발령 나흘째, 그는 이미 현장 출장 몇 건을 마쳤고 곧 다시 지방으로 내려갈 채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정산개발의 디테일에서 단련된 4년 반
처음 마이리얼트립에 합류했을 때 그는 페이먼트 개발팀 수습이었습니다. 주문, 결제, 구버전 정산, 포인트·쿠폰·혜택이 한 팀 안에 뒤엉켜 있던 시기였습니다. 어느 날 팀에서 새로운 정산 시스템을 처음부터 만든다는 공지가 떴고, 그는 바로 손을 들었습니다.
“새로운 도전의 기회가 오면 못 참는 DNA를 가진 것 같아요.”
그렇게 맡은 정산 시스템을 4년 반 동안 처음부터 설계하고, 올리고, 운영했습니다. 정산은 여행 상품이 팔린 뒤 돈이 흘러가야 할 마지막 단계입니다. 마이리얼트립이 파트너·고객·플랫폼 사이에서 어떤 금액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결정짓는 영역이죠. 회계 처리가 맞물려 있어 앞단에서 들어오는 데이터의 형태도, 뒤로 내보내는 결과의 형식도 거의 다 정해져 있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 역시 그 정밀함에서 왔습니다.
“사업적 임팩트를 내고 싶은 상황에서도 1원의 오차만 있으면 그걸 찾아야 하고, 찾아서 보정해야 돼요. 그게 어떤 시기에 몰려오면 하루 이틀, 길면 며칠이 그것만으로 지나가요. 앞으로 전진을 못 하는 답답함이 계속 쌓였어요.”
흥미로운 건 그가 정산개발을 ‘체질’이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반대였습니다.
“제 성격은 사람 만나는 거 좋아하고, 대화하는 거 좋아하고,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과제만 던져지는 걸 좋아해요. 정산개발은 제 성격에 안 맞는 일이었어요. 다만 디테일을 잘 못 챙기는 제 약점을 보완하기에 좋은 도메인이라고 생각해서 그때 지원했던 거죠.”
그 시간이 그의 PE 근육을 만들었습니다.
공지를 본 지 3초, 결심은 이미 서 있었다
3월 중순의 어느 날, 마이리얼트립 이동건 대표가 사내에 공지를 하나 올렸습니다. ‘세일즈/마케팅 역할 확장 기회’ — 해당 영역으로 역할을 넓혀 보고 싶은 사람을 내부에서 찾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구체적인 팀이나 업무는 그 시점엔 정해지지 않은, 기회 자체를 여는 공지였습니다.
“그게 그냥 저에게 보낸 메시지처럼 보였어요. 결정하는 데 3초도 안 걸린 것 같아요. 이건 내가 해야 된다.”
다음 날 저녁 이동건 대표와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대화가 끝날 무렵 결심은 이미 서 있었습니다. 곧이어 관련된 모든 사람이 한자리에 불려 모였고 팀 구성이 그 자리에서 정리됐습니다. 모든 팀과 타겟 날짜, 인사 이동 일자까지 확정된 건 그로부터 3일 만이었습니다.
개인의 결정이 3초였다면, 회사 쪽 실행은 3일이었습니다. 공지 한 줄이 올라오고 다음 날 저녁 대표와의 저녁 식사, 곧이어 관련자 소집, 그 뒤 3일 안에 팀과 일정이 모두 정리된 흐름은 한 사람의 빠름만으로는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승현님의 속도를 받아칠 수 있는 리듬이 회사 쪽에도 있었다는 쪽에 가깝습니다.
공지의 형식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위에서 사람을 지목해 내려보내는 발령이 아니라, 기회 자체를 먼저 공개하고 내부에서 손을 든 사람을 기다리는 방식이었습니다.
“정산개발에서도 어떻게 하면 사업적 임팩트를 낼까 계속 고민하고 있었고, AI 에이전트도 따로 만들고 있었거든요. 4년 반 동안 그 에너지를 쌓아온 거였어요. 그러다 기회가 왔으니 저한테는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었어요.”
약점을 보완하려고 정산개발로 먼저 들어갔던 사람이, 이번엔 잘할 거라고 믿던 자리로 걸어 나오는 중입니다. 방향은 달라 보이지만, 결정하는 방식은 똑같았습니다.
준비한 건 지식이 아니라 자리였다
정작 놀란 건 주변이었습니다.
“주변 반응이 너무 격해서 오히려 제가 놀랐어요.”
평소 가깝게 일한 동료들은 잠깐 놀랐다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승현님이면 그럴 수 있을 것 같다”는 반응이었습니다. 반면 상대적으로 거리가 있던 사람들에게서는 결이 다른 반응이 돌아왔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개발을 계속한다는 거야, 아니면 직무를 바꾼다는 거야?’ 하시는 분들도 계셨어요. 직무 사이를 가로지르는 이동 자체가 흔치 않다 보니까요.”
이렇게 반응이 폭넓게 엇갈렸다는 사실 자체가 승현님에게는 또 하나의 신호였습니다. 개인의 성향 문제라기보다, 그만큼 엔지니어링과 세일즈 사이에 구조적인 거리가 있다는 뜻이었고, 그 거리를 줄여 보고 싶다는 동기와 맞닿아 있었습니다.
준비 과정은 의외로 소박했습니다. 일반 지식을 훑고, 새로 맡게 될 현장 시장을 스터디한 정도였습니다. 그 이상은 일부러 쌓아 두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부딪히면서 배울 내용이 훨씬 많으니까요. 그걸 어떻게 하면 빨리 내 걸로 만들어서 기존 세일즈 인력과의 갭이 안 느껴지게 할지, 그리고 개발자 출신으로서 어떻게 하면 세일즈 동료들과 똑같이 일하는 사람으로 끝나지 않을지 — 역할과 포지션에 대한 고민이 가장 컸어요.”
지식을 쌓는 쪽이 아니라 자기 자리를 어떻게 정의할지에 먼저 시간을 썼다는 점. 이 선택 자체가 이미 ‘만드는 사람’의 사고방식에 가깝습니다.

맥락은 낯설었고, 옷은 맞았다
새로운 업무를 두고 나눈 첫 회의, 그리고 첫 외근. 지방에 내려가 현장 담당자와 동행했던 장면이 인상 깊었습니다. 차로 한참을 달려가며 숙소를 둘러봤고, 저녁에는 함께 식사 자리를 이어갔습니다.
“너무 다르니까 인지부조화가 왔어요. ‘내가 지금 마이리얼트립을 계속 다니고 있는 게 맞나, 왜 지금 이직을 한 것 같지?’ 하는 생각이 잠깐 들 정도로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몸에 잘 맞는 옷을 입은 느낌이 들어서, 오히려 기대됩니다.”
일주일 남짓 현장에 나가 보니 그가 평소 가지고 있던 문제의식도 빠르게 확인됐습니다.
“세일즈와 IT 제품은 조직 구조상 꽤 떨어져 있어요. 현장의 요구가 사업부와 PM을 거쳐 다시 개발 쪽까지 가는 동안 메시지가 조금씩 깎이거든요. 누군가의 문제가 아니라, 거리 자체가 만들어내는 굴절이에요. 와서 보니 그 지점이 생각보다 많이 보여요.”
그는 지금 그 굴절 한가운데에 서 있습니다. 내부의 숙박 상품 등록 시스템이 기존에 주력하던 유형에 맞춰 설계되어 있어, 새롭게 합류하는 사업주들이 바로 쓰기에는 단계가 많다는 문제가 눈에 들어왔고, 그에 맞는 카탈로그 페이지를 새로 올리는 작업에 바로 착수했습니다. 자동화 과제 서너 개가 동시에 돌아갑니다. 외근에 들고 나갈 브로셔는 스스로 디자인해 하루 만에 인쇄소로 넘겼고, 현장에서 돌아오면 바로 다음 작업 스콥을 쪼개 놓는 식입니다.
“같은 팀원들한테 ‘이건 딸깍하면 돼요’ 하고 가이드로 만들어 두면, 다른 팀에 물어볼 필요 없이 바로 움직일 수 있거든요. 그 거리를 조금씩 좁히는 일을 제가 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세일즈 현장과 제품을 잇는 사람이 한 명 들어왔다는 것. 이번 이동의 실제 기대치는 여기에 있습니다.

계획이 어긋날 때 숙련도가 올라간다
승현님은 오히려 예상과 다른 순간을 기대하는 쪽입니다.
“저는 사실 예상과 다른 일이 나오는 걸 기대하는 편이에요. 예상한 대로만 흘러가면 배울 게 없거든요. 어긋나는 순간에 그걸 해결하는 과정에서 뭔가 배우니까요.”
세운 가설과 전략이 현장에서 하나도 먹히지 않아서 근본부터 다시 뜯어고쳐야 하는 장면. 그런 순간을 오히려 바라고 있습니다. 여행도 30분 단위로 일정을 짜는 파워 J이지만, 그 계획이 어그러졌을 때 임기응변을 거듭하며 가이드 숙련도가 올라가는 감각을 압니다. 예상과 다른 것을 기대한다 — 이 태도는 개발자 시절 그의 일을 끌고 온 축이기도 했습니다.
해결법이 아니라, 문제에서 거꾸로
왜 하필 세일즈였을까요. 승현님이 이 이동을 택한 데에는 거창한 선언보다 자기만의 관찰이 먼저 있었습니다.
“지금은 오히려 문제보다 해결법이 더 많은 세상이에요. 제가 문제라고 얘기하지도 않았는데, 누가 해결해 준다고 달려드는 세상이거든요.”
그래서 그는 반대 방향을 택했습니다. 해결법(AI)에서 출발해 풀 문제를 찾는 대신, 현장에서 진짜 문제를 만나러 들어가는 쪽이었습니다.
“제품이나 기술에서 출발하면 돈 버는 제품이 안 나와요. 거꾸로 문제에서 들어와서 이걸 AI로 풀자로 가야 해결이 확실해지니까요. 진짜 문제를 직접 만나보자 — 이게 세일즈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였어요.”
비슷한 고민을 하는 동료에게 전하고 싶은 말도 분명합니다.
“한 가지 일을 너무 오래 하면 나름대로 자기만의 틀을 만들게 돼요. 그 틀에 안주하고, 다른 사람들이 만든 좋은 틀과 수렴하는 순간 그 일은 AI에 대체되기 쉬워요. 그래서 오리지널리티를 만들고, 남들이 안 하는 조합을 시도해야 돼요.”
그 ‘조합’은 사람 수만큼 다를 것입니다. 승현님이 고른 조합이 엔지니어 × 세일즈였을 뿐, 본인도 이 선택이 누구에게나 정답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저는 이 조합이 저한테 맞았던 거고, 각자에게 맞는 조합이 다 따로 있을 거예요. 직무를 꼭 바꾸지 않아도, 평소에 자기가 안 해본 일 쪽으로 조금씩 걸쳐 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첫 발짝의 기록
3초 만에 결정된 전환. 그 시간 쌓은 프레임워크를 뒤로하고 현장으로 먼저 걸어 들어간 사람.
승현님의 이번 이동은 코드 바깥, 현장의 마지막 한 장면까지 PE의 정의가 확장될 수 있는지를 회사가 함께 시도하는 실험입니다. 한 사람의 특별한 선택이라기보다, 엔지니어링과 세일즈·사업 사이의 거리를 좀 더 가깝게 재배치해 보려는 조직의 시도에 가깝습니다. ‘만들기만 하던 사람’에서 ‘직접 팔 수 있는 사람’으로 — 회사가 정의한 다음 단계에서, 이번 이동은 그 첫 발짝입니다.
“새로운 도전은 결과가 어떻든 배우는 게 많아요. 성공적이면 당연히 좋고, 실패한다 하더라도 실패한 이유가 남으니까요.”
이 경로가 누구에게나 정답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이런 방향도 가능하다는 사실이 회사 안에 한 번 기록됐다는 것 — 그 기록을 승현님이 자발적으로 썼다는 것이 이번 사례의 본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