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기반 계약 검토 자동화와 마이리얼트립 서비스정책실의 선택
AI 챔피언 12번째 이야기 — 서비스정책실 변철주님
AI 챔피언 12번째 이야기 — 서비스정책실 변철주 실장
계약서는 중요한 문서입니다. 동시에, 조직 안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조용히 소모해야 하는 문서이기도 합니다. 서비스가 하나 늘어날 때마다, 파트너십이 확장될 때마다 계약서는 자연스럽게 늘어났고, 그만큼 검토 과정에 투입되는 시간도 함께 늘어났습니다.
마이리얼트립 서비스정책실장이자 사내 변호사인 변철주님이 처음 주목한 것도 계약서의 난이도나 법적 복잡성이 아니었습니다. 계약 검토라는 과정이 만들어내는 구조적인 지연, 그리고 그 지연이 조직 전반의 판단 흐름을 끊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계약 검토가 서비스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분명히 속도가 새는 지점은 존재했습니다.
AI 기반 계약 검토 자동화는 철주님의 선택에서 출발했습니다. 이 선택은 단순히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겠다는 결정이 아니라, 계약 검토라는 업무를 구성하는 단계를 다시 나누고 재배치하겠다는 판단이었습니다.
병목은 ‘판단’이 아니라 ‘핑퐁’
계약 검토가 지연되는 이유는 판단이 어려워서가 아니었습니다. 실제 병목은 법무 검토 이전과 도중에 반복되는 사실관계 확인 과정에 있었습니다.
계약서를 검토하다 보면, 결국 이런 질문으로 멈추게 됩니다. 계약 기간이 정확한지, 적용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정산 조건이 기존 정책과 어긋나지는 않는지. 이 질문들은 대부분 판단의 문제가 아니라 확인의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이 확인은 단번에 끝나지 않았습니다. 법무팀에서 사업팀으로, 다시 파트너로, 그리고 다시 법무팀으로 돌아오는 과정이 반복됐습니다. 단순한 질문 하나가 계약 일정 전체를 며칠씩 지연시키는 구조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손실은 시간이 아니라 맥락이었습니다. 며칠 뒤 답변이 돌아오면, 검토 담당자는 이미 흐름이 끊긴 상태에서 다시 처음부터 계약서를 읽어야 했습니다. 컨텍스트 스위칭은 반복됐고, 판단의 밀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철주님이 문제로 본 지점은 바로 여기였습니다. 사람이 해야 할 판단의 무게는 그대로인데, 그 판단에 이르기 전 단계가 조직의 에너지를 과도하게 소모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질문을 바꾸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던진 질문은 “계약 검토를 자동화할 수 있을까”가 아니었습니다. 대신 이런 질문이 먼저였습니다.
“법무 판단이 시작되기 전에, 무엇까지는 반드시 정리돼 있어야 할까?”
이 질문에서 나온 목표가 바로 Back-and-Forth-Free Contract Review였습니다. 계약 검토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필요한 핑퐁을 제거하고, 판단이 필요한 상태의 계약서만 법무 검토로 넘기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이를 위해 선택한 접근이 Fact-First였습니다. 이 계약이 괜찮은지를 묻기 전에, 판단에 필요한 사실이 모두 갖춰졌는지를 먼저 확인하는 방식입니다. 질문을 빠르게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이 필요 없는 상태를 만드는 쪽에 가까웠습니다.

자동화의 대상은 ‘팩트’였다
이 원칙은 시스템의 성격을 명확히 규정했습니다. 이 시스템은 계약서를 대신 검토하지 않습니다. 대신 계약서에 담긴 사실관계를 먼저 구조화합니다.
계약서는 하나의 긴 문서로 다뤄지지 않습니다. 계약 기간, 적용 범위, 정산 조건, 책임 주체처럼 반복적으로 확인되는 항목을 중심으로 조항 단위로 분해됩니다. 정책적으로 한 번 더 살펴봐야 할 표현은 맥락과 함께 드러나도록 정리됩니다.
중요한 점은 이 과정 어디에도 결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AI는 ‘문제가 있다’거나 ‘문제가 없다’는 판단을 내리지 않습니다. 판단이 가능한 상태를 만드는 것이 이 시스템의 역할이었습니다.
정책 업무 흐름을 기준으로 한 기술 설계
이 시스템의 기술 설계는 정책 업무 흐름에서 출발했습니다. 계약 검토는 단일 질문에 단일 답이 나오는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단일 프롬프트 기반의 구조는 처음부터 배제됐습니다.
대신 실제 업무 흐름을 기준으로 한 워크플로우형 구조가 설계됐습니다. 계약서는 기존과 동일하게 협업 도구를 통해 업로드되고, 업로드 시점을 기준으로 자동화된 검토 프로세스가 시작됩니다.
먼저 계약서 원문은 텍스트 단위로 분해돼 핵심 조항별로 구조화됩니다. 이후 계약 기간, 적용 범위, 정산 조건, 책임 주체 등 반복적으로 확인되는 항목을 중심으로 사실관계 추출 단계가 진행됩니다. 이 단계에서는 판단이나 평가가 아니라, 문서에 명시된 내용을 그대로 드러내는 데 집중했습니다.
다음 단계에서는 추출된 사실관계를 기준으로 정책 체크 포인트를 연결합니다. 기존 법무·정책 검토 과정에서 사람이 사용하던 체크리스트를 기준으로, 다시 확인이 필요한 지점이나 조건 불일치 가능성이 있는 항목을 정리합니다. 이 과정 역시 ‘위험 여부’를 판정하지 않고, 검토가 필요한 후보를 정리하는 수준에 머물도록 설계됐습니다.
이 모든 과정은 단일 모델의 한 번의 응답으로 처리되지 않습니다. 계약 검토는 한 번에 답이 나오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단계별로 역할이 다른 AI 처리 단계를 거치도록 구성됐습니다. 생성형 AI의 결과가 매번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은 기술적으로 억제하기보다, 단계 분리와 반복 검증이라는 프로세스로 흡수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결과물은 새로운 시스템 화면이 아니라, 기존 협업 도구 안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전달됩니다. 계약서를 다시 열어보지 않아도 핵심 사실관계와 확인 포인트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정리된 형태로 제공되며, 담당자는 이 정보를 바탕으로 판단에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기술은 전면에 나서지 않았습니다. 이 시스템에서 AI는 판단 주체가 아니라, 판단을 준비하는 보조 역할로 명확히 위치 지어졌습니다.

변화는 속도가 아닌 대화에서
시스템 도입 이후 계약서 검토에 걸리는 시간은 분명히 줄었습니다. 하지만 더 의미 있는 변화는 회의 자리에서 먼저 나타났습니다.

“이 문장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라는 질문보다 “이 조항을 왜 문제로 보는가”라는 질문이 더 많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정책 담당자들은 문장을 읽는 역할에서, 판단의 근거를 설명하는 역할로 이동했습니다.
AI가 반복적인 준비 작업을 맡으면서, 사람은 판단 그 자체에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게 됐습니다.
이 변화는 서비스정책실 안에만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사업 조직은 계약 초안 단계에서부터 더 많은 사실관계를 정리하게 됐고, 파트너와의 협의 역시 앞단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 결과 법무 검토는 단순한 확인 절차가 아니라, 실제로 논의가 필요한 쟁점에 집중하는 단계로 이동했습니다. 계약 검토는 더 빨라졌지만, 동시에 더 깊어졌습니다.
스케일의 문제, 그리고 구조적인 선택
서비스가 확장되면서 계약의 양 역시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사람을 늘리는 방식으로 해결하는 데에는 명확한 한계가 있었습니다.
철주님이 AI를 선택한 이유는 더 많은 계약을 처리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사람이 판단해야 할 지점을 끝까지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사실관계 확인이라는 병목을 구조적으로 분리하지 않으면, 정책 조직은 언젠가 서비스 성장의 제약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AI는 앞으로 계약서를 읽고 요약하고 위험을 예측하는 일까지 더 잘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기술이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날수록, 더 중요한 질문이 남습니다.
우리는 어디까지를 기술에 맡길 것인가.
정책은 효율의 문제가 아니라 책임의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철주님은 기술이 할 수 있는 최대치보다, 사람이 책임질 수 있는 경계를 먼저 그었습니다.
이 AI 기반 계약 검토 자동화 시스템은, 그 변하지 않는 기준 위에서 기술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고민한 결과였습니다.